봉사에 관하여

2019. 11. 20. 17:15카테고리 없음

봉사와 불쾌감

                                                                              

 최근 사내에서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지원자 중에 평소 봉사활동을 행해온 사람들을 선발해서 간다는 내용이었다.  주위에서 다녀 오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마뜩잖았다. 연말인 관계로 내가 해야 하는 업무와 개인적인 일이 모두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거절을 했다. 

 

 봉사활동은 무엇일까?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연말연시에 행해지는 각종 성금 모금 운동이라던가, 가끔 기사에 나오는 익명의 현물 기증자들도 있는가 하면, 각 복지 관련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부터 출근시간 교통정리해주시는 기사님들까지 다양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왔지만 마땅하게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 생산력을 제공을 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봉사활동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분 들에 대한 나의 인식도 문제가 있다. 앞에 언급한 생산력에 대한 대가 없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봉사를 하고 계신 분 들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이 일어나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은가 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 그런 그들에게 불쾌감을 느낀다.   일상에서 자주 있지는 않지만 봉사 관련한 홍보를 할 때  뭔가 봉사를 강요당하는 기분을 받고는 한다.  ‘나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너는 내 말에 따라 나와 함께 봉사를 하자. 거부한다면 너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지는 않지만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열등감일 일어나고 그런 기분에 사로 잡혔던 것에 인해 불쾌감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내가 은둔형 외톨이라고?

 가끔 내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가 의심해 볼 때까 있다. 마흔을 바로 보는 나이에 이성교제도 없고 직장과 학습 관련해서 만나는 사람들 외에는 교류가 없다.  

 

 술도 좋아하지 않아 퇴근 후 한잔이라는 이야기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이고, 가족 친지 간의 만남 자리에도 중대사가 없이 간단하게 식사 겸 술을 마시자면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해 왔다.

 

 가족모임도 안 나가니 자연스럽게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연이 끊겼고, 친구들끼리 터놓고 하는 가벼운 대화라는 것은 나에게 없다.  

 

 그런데 이만하면 외로움을 느낄 만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매일 하루하루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문제다.  

 

 회사에서도 이런저런 업무를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 있고, 집에서도 컴퓨터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되어 있다. 

 

 이 기간이 너무 오래되자.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게 되었다. 이게 쌓여서 최소한의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관도 개인적으로 안 가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거기다가 내가 사는 곳은 성북구다 걸어서 10분이면 극장이 있고, 버스로 10분이면 대학로다. 그런데도 연극 한 편 보러 가지 않고 방구석에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시간은 만드는 거다 라고. 

 

영화 김씨표류기 중 / 출처 : 다음 영화 김씨표류기(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6148)

 

직장 다디는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조사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영화 ‘’김씨표류기’에 나오는 ‘여자 김’이다.  모든 생활은 방 안에서 해결하고 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을 회피하는 부류 말이다.  그런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조사해보니 그 종류는 매우 다양했고, 특히 나와 닮은 부류들도 존재했다. 이 부류는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한 활동일 뿐 대인관계는 매우 제한적이고 퇴근 후에는 집안에서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이들도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되고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때는 이성교제를 하고 있을 당시라 나와 관계된 이야기라 생각 안 했는데,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의 나의 행태를 곱씹어보니 내가 딱 그 분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일단 종교활동은 힘들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종교와 관련된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나 스스로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매 순간 확인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기다가 내세를 믿지 않는데 내세를 위해 현세를 헌신해야 하는 종교활동은 마음의 도피처는 될지언정 현세의 나를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난 게 봉사활동이었다. 

 

 

도구로써의 봉사활동

 

 처음 봉사활동을 생각했을 때, 이는 순수한 봉사를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 중에 어르신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단체 활동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무언가 기술들이 늘어가지 않을까 하는 나 자신의 자기 계발의 발판으로써, 기술력 성취라는 목적의 도구로써 봉사활동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만 했을 뿐 시간이 없었다.  매일매일은 매우 빠른 시간으로 돌아갔고, 금요일 퇴근해서 이것저것 못 봤던 예능들이나 드라마를 보고,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해가 중천에 뜨면 이불 뒤집어쓰고 잠을 자는라 너무 바빴다. 그렇게 생활리듬을 깨트려 놓고 나면, 일요일은 항상 초저녁에 미리 잠을 청했다. 월요일을 위해.

 

 이러한 생활패턴 속에 봉시 활동을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애초에 없었다. 

 

 봉사활동 지원서 양식에는 내가 해온 봉사활동을 기재해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봉사활동을 증빙하는 공식적인 체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복지부나 행안부와 연계된 봉사활동 사이트들을 찾아냈고, 공식적으로 증빙되는 내 인생의 봉사활동 시간은 헌혈 2회를 통한 4시간이 전부였다.  20대 때는 헌혈증 모으는 것이 취미였는데, 30대 중반 이후 혈압이 높아 헌혈을 못한지도 한참이다.  많지는 않지만 수해복구지원 봉사, 장애인시설 지원 봉사 등 고등학교와 졸업 후 잠깐 했던 경험들은 고등학교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나에게는 증빙할 방법이 없다.  

 

 그러고 나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대부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생산력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학생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고 그를 가점으로 인정해주는 봉사활동 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없어서 행안부, 복지부 등 국가가 인정하는 봉사활동 인정시간을 자기 시간을 녹여내는 것인군. 하고 말이다.

 

 그런데 내 그런 생각은 처참하게 깨졌다. 이달의 우수봉사자들을 매달 갱신하며 올리고 페이지를 발견했고, 거기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중년의 어르신들이었다.  학생들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면 내 생각을 옳다고 자위했겠지만 도대체 이 어르신들은 무얼 위해 봉사를 한단 말인가?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봉사란 무엇인가?

  20대 후반에 재미있게 본 미드가 있다. 헨리 8세라는 미드였는데, 지방의 영주들이 헨리 8세를 지근에서 모시며 봉사를 했고 그들은 그것을 큰 영예로 생각했다는 표현들이 있다. 왕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이 영예라고?  그냥 세수할 물 떠다 주고,  밥 먹을 때 테이블 세팅해주고 하는 것을 흔히 생각하는 하녀나 시종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방 영주나 그 자제들이 하고 있었고, 왕비를 모시는 하녀 위치의 여자들은 영주들의 딸 들이었다. 저런 잡일을 하는 것이 영예라고?

 

 한국 사극에 나오는 내시나 궁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어서였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내시나 궁인들이 궁밖에 나오는 장면에서는 일반 백성들보다 높은 신분이기는 했지만 관료들은 그런 일을 안 하는데, 왜 영주나 되는 인물들이 왕을 위해 봉사는 것이 영예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영주를 모시는 집사들과 메이드들의 자부심에 대한 표현에 놀랐다.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마름이라던가, 머슴이라던가 항상 일은 소처럼 부려 먹고 세경 때 먹는 주인들 이야기를 동화책을 보며 자란 나는 그들이 표현하는 자부심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미군이 국가에 대해 봉사하는 것에 대한 영예를 느끼는 점이나, 그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존경의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주느냐 안 주느냐로 말싸움을 하는 씬에서는 서비스, 봉사라는 단어가 내가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 내가 생각하는 봉사활동에 대한 개념이 다른 사람들도 보편적으로 느낄 것이라는 생각은 앞에서 말한 ‘이달의 우수 봉사자’들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며 보편적이 아닌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헨리 8세 초상 /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헨리_8세)

 

시간은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봉사활동을 시작할 수 없다.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대라고 하면, 글로 쓰지 못하지만 100개의 이유를 만들 수도 있고, 1000개의 이유도 만들 수 있다.  모든 이유들의 결론은 시간이 없다로 향하고, 그렇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할 수 없는 결론으로 다다 른다. 

 모든 것은 핑계이고, 원래 시간은 없다. 애초에 나에게 봉사활동을 할 시간이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먹고살아야 하고, 그렇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그리고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내 맡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공공에 대한 정당한 봉사이고, 그 대가로 내가 월급을 받고 있지 않은가. 

 결국 계속해서 이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오고 그 모든 논리적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노력들은 핑계이다. 

 시간은 원래 없다.  죽어서 무덤에 갈 때까지 봉사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는 계속할 수 있다.  결국 이 무한의 띠를 깨기 위해서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그렇기에 이런 글들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다. 결국 다시 한번 핑계를 만들어 본다.  ‘이번 연말까지는 진짜 시간이 없으니까. 새해 목표는 봉사활동으로 세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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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image : Photo by Dakota Corbin on Unsplash